라이더 이야기

라이더 입문 이야기 (1) - 오토바이를 타면 다 죽는 줄 알았다

맹뚜라미 2021. 11. 12. 15:20

친척 중에 오토바이 센터를 운영하셨던 분이 있다.
이 분에게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이 종종 하시던 말씀이
그분은 누군가 오토바이를 사 가면 미리 조의를 표하신다고 했다.

저 사람도 큰 사고에 휘말려 죽음이 가까워질 수 있겠구나, 하고.


이 분의 영향 때문인지 부모님과 주변사람들에게

어릴 때부터 오토바이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만 들어오며 고등학생이 되었다.

학교가 끝나고 하교를 하려는데 여자친구를 데리러 온 일진 양아치들이 오토바이를 요란하게 몰고 왔다.
'아, 역시 오토바이는 양아치가 타고 다니는 거구나'

대학생 시절 학생회 워크샵이 있었다.
알바가 끝난 후에 후발주자로 가야 했던 나는 콜택시를 타야 하나 고민했는데
후발주자로 가는 다른 선배가 태워주겠다고 했다.
오토바이에.
그렇게 맞이한 오토바이 첫 경험은 재미있었다. 아니 신났다.
고개를 치켜들고 일부러 바람을 맞았다.

그래도 오토바이를 타면 죽을 거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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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4월, 결혼을 했다.
20살 때부터 바이크를 타던 민뚜가 운전석을 내려온 지 4년 차가 되던 해였다.
그 해 여름 즈음에 민뚜가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바이크는 끊는 게 아니라 참는 거라고 생각해. 사실 나는 지금도 정말 타고 싶어."

반대할까봐 긴장되고 간절한 눈빛을 보고 한참을 고민했다.
차 운전을 워낙에 선비처럼 얌전하게 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같이 바이크를 탔던 사람들의 '이륜차도 사륜차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운전했었다'는 증언을 들었던지라
작은 배기량 한정으로 허락했다.
내 허락 전에 매물은 이미 다 준비해놓고 있었더라.
이 자식...

그렇게 17년식 혼다 슈퍼커브를 들였다.
슈퍼커브는 우리의 발이 되었다.

주차하기 힘든 곳을 갈 때에도 바이크는 부담이 없었다.
나는 뒤에 텐덤하여 동네 마실도 다니고, 도심 밤바리도 다니고, 지방 여행도 다니고, 모토캠핑도 다니고
여기저기 전국적으로 많이도 쏘다녔다.


다니다 보니 느낀 것은 커브가 참 좋은데 너무 작았다.
차들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발견하더라도 작아서 무시하는 듯이 우리 차선으로 밀고 들어오며 목숨을 위협했다.
그렇게 1년 정도를 타고나니 기변을 생각하게 되었다.

둘이서 타고 놀러다니기에 불편하지 않은, 적당히 큰 덩치를 가진 바이크로.
결국엔 지인의 추천을 받고 
'둘이 타고 전국적으로 다니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라는 생각으로 bmw f800gt를 적당한 중고로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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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800gt는 역시 좋은 바이크였다.

커다란 탑박스와 사이드박스가 자리잡고 있어 뒤로 밀려나지 않겠다는 든든함도 있었고

투어러타입의 바이크이다보니 포지션도 굉장히 편했다.

클러치레버가 굉장히 무겁지만, 엔진열이 많이 오르고 N단이 잘 안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 단점은 민뚜가 온전히 감당하고 있는 부분이었고 민뚜는 나에게 단점을 투덜거리지 않았다.


f800gt에 텐덤을 하고도 한참을 타며 여행을 다녀보니 욕심이 생겼다.
나도 내가 운전을 하고 싶다는.

민뚜는 엔진 구조와 바이크 조작법, 가고 서는 방법, 코너를 안전하게 돌아나가는 방법 등

이론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었고,

뒤에 탄 나에게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는 거야' 라며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지인들의 많은 바이크에 앉아보고, 뒤에 타며 무게중심을 옮겨보면서 가진

나도 타고 싶다는 생각을 얘기했을 때 민뚜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2종소형의 난이도가 극악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원동기를 도전하기로 했다.
원동기 면허를 따면 뭘 타고 다닐지도 같이 많이 고민했다.
처음이니까 스쿠터가 기어 변속을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좋을 것 같아.
개미같이 생긴 머리를 가지고 있는 디자인은 싫어.
시트 높이는 키가 큰 편이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다.
하며 정한 기종은 pcx였다.
사고만 나지 않고 소모품만 잘 교환해 준다면 
엄청난 키로수를 도달하는 동안 고장이 잘 나지 않는 무적의 혼다의 주력 스쿠터.
아직 면허를 따지도 않았는데 결정하자마자 민뚜는 바로 pcx를 사와 버렸다.

일단 사 온 pcx로 며칠 동안 가고 서기, 8자돌기를 연습한 후 시험코스를 그려서 연습했다.
민뚜는 잘 한다고 칭찬해 주며 기분 상하지 않게 피드백을 해주는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연습할 때 느낀 자신감은 면허시험장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연습했던 pcx와 다르게 시험장의 시티는 스로틀을 감자마자 앞으로 튀어나갔다.
굴절코스의 굴절을 무시하고 앞으로 튀어나가버린 것이다.
나는 익숙한 것만 잘한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바로 포기하고 면허학원을 등록했고 면허학원의 시티가 익숙해지자 가볍게 합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민뚜와 라이더 지인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도로에 입문했다.
운전 경력이 전무하기 때문에 도로 상황은 깜깜했고
경직된 나와 후들거리는 pcx. 총체적 난국.
앞브레이크와 뒷브레이크를 구분해서 쓸 줄 몰랐고
차선을 변경할 때 속도를 줄이면서 들어가서 차선을 막아주던 지인과 사고도 날 뻔했다.
하지만 달린 키로수가 늘어나고, 가본 곳이 점점 더 많아지고, 더 많은 도로와 더 많은 상황을 겪고 나니  
코너를 만나도 자신감 있게 돌아나갈 수 있고 
에스코트 없이도 도로 상황을 판단하여 내 앞가림을 할 줄 아는
한 명의 어엿한 라이더가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