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종소형에 대한 욕심이 생긴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민뚜의 기변이었다.
어느 날 다니던 센터에 15년된 스즈키 R600 매물이 저렴하게 나왔다.
4기통을 한 번도 타보지 못한 민뚜는 4기통 R차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 있었고
마침 휘청이던 가계재정이 다시 자리를 잡아가던 와중이었다.
직접적으로 사고싶단 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나는 민뚜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음을 알았다.
R600은 전자장비라고는 그 흔한 abs 조차도 들어있지 않은 '날것'이었다.
하지만 전자장비에 의존해야 할 정도로 민뚜가 위험하게 타거나 실력이 없지 않음을 알았다.
오히려 이것저것 뜯고 고치는 일명 호작질을 좋아하는 민뚜에게
전자장비가 없다는 뜻은 만지기 좋은 기계를 의미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화석 R600을 들였다.
오래되어 금가고 깨진 카울을 사제 카울로 교환하고
핸들과 스텝의 각도와 높이를 몸에 맞추어 조정하고
소모품을 전체적으로 교환하고 번쩍번쩍하게 세차를 했다.
이렇게 새것처럼 번쩍번쩍하게 관리한 4기통 미들급 R차는
내가 타는 슈퍼커브와 속도를 맞추어 달렸다.
빨리 가는 것보다 느리게 가는 것이 더 힘들 텐데도
민뚜는 절대 나를 두고 먼저 가지 않았다.
R600은 슈퍼커브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가느라 힘이 들고
슈퍼커브는 R600을 따라가기 위해 무리하게 엔진을 돌렸다.
자존심도 상하고 고맙고 미안하기도 했다.
너무 큰 배기량은 무서웠지만 300cc급 배기량까지는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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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종소형은 시험장으로 곧바로 간다면 절대 합격할 수 없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원동기 면허 취득할 때 느꼈듯이 나는 익숙한 것만 잘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원동기 면허를 취득할 때 갔던 학원으로 다시 등록했다.
이 학원의 코스는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울퉁불퉁하고
코스와 코스 사이의 거리가 짧아 재정비할 공간이 없는 등 난이도는 어려웠지만
원동기를 같은 학원에서 땄기 때문에 내야 하는 금액이 적었고 집에서 가까웠다.
미라쥬250은 굉장히 낮고 무겁고 길었다.
근육이라고는 살아서 움직일 정도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나는
한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연습했다.
근육은 없지만 운동신경은 있는 편이어서
다행히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성공률을 올리며 연습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시험 당일이 되었고 나는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내 차례가 되어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크게 심호흡을 하고 손을 들었다.
첫 코스인 굴절 코스에서 "탈선입니다"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심호흡을 할 때 떨어지면 다시 보면 된다는 마인드 컨트롤을 완료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학원의 S자 코스와 협로 코스가 이어지는 부분은 심각하게 좁고 가까웠다.
하지만 연습을 할 때 S자 코스를 어떻게 탈출해야
협로 코스로 자연스럽게 진입할 수 있을지를 연습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다.
물론 완벽하진 않았지만 탈선하지도 않았고 이후의 장애물 코스를 신나게 지나온 후 합격했다.
언덕에 있는 시험장 아래에서 기다리던 민뚜에게 신나게 뛰어갔다.
민뚜는 시작하자마자 울린 탈선 안내음성을 듣고 탈락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긴장이 풀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격양된 목소리로 합격후기를 이야기했고
민뚜는 환하게 웃으며 잘했다고, "2종소형은 싸나이의 면허지!" 라며 자랑스러워했다.
나도 "난 이제 2종소형 있으니까 싸나이네!" 라며 덩달아 자랑스러워했다.
-
내 취향은 확고했다.
R3처럼 전체적으로 카울링이 되어있는 바이크는 '너무'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어 정이 가지 않았다.
클래식한 디자인을 좋아하지만 '너무' 클래식한 디자인은 싫었다.
디자인을 타협하기도 싫었다.
정이 가지 않는 바이크를 어쩔 수 없이 타는 것이 싫었다.
오직 디자인만 보고 고른 기종이 CB300R이다.
다른 기종은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민뚜는 CB300R이 비인기기종이라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남들이 안타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라며 비슷한 네이키드 기종인 MT03을 추천했지만
내 기준에서는 안 이쁘게 생겼기 때문에 싫다고 했다.
쿼터 배기량의 기종이 다양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정식수입되는 모든 기종을 찾아봐도 마음에 드는 기종은 없었다.
도리어 민뚜를 설득하기 위해 CB300R의 성능을 찾아보았다.
쇼와 쇼바, 닛신 브레이크 캘리퍼, 코너링ABS인 IMU ABS 등등
오직 디자인만 보고 고른 것이지만 생각보다 옵션이 좋았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야 타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타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자주 타고
자주 타야 빨리 익숙해져서 재밌게 탈 수 있을 것 같다며 설득했다.
내 고집은 싸나이의 고집이었고
결국 CB300R 매물을 찾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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