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 이야기

라이더 입문 이야기 (2) - 사람은 적응의 동물

맹뚜라미 2021. 11. 17. 11:32

한편 내가 원동기를 준비할 때 즈음 민뚜는 마음이 설레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드림카였던 할리데이비슨 883.

이 중 883 슈퍼로우 기종이 적당한 금액대에 중고매물로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f800gt를 처분하고 883 슈퍼로우를 가져온 민뚜와

원동기 면허를 취득하고 pcx를 직접 운전하게 된 나는 

한창 모토캠핑에 재미를 느끼며 역마살이 낀 것마냥 돌아다녔다.

 

그렇게 14,000km 내외 정도를 타고 나니 강원도의 산길도 많이 다니는 우리는 
각자 바이크의 단점들을 아쉬워하기 시작했다.
pcx의 경우 언덕에서 탄력을 받지 못하면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든다는 스쿠터의 한계.

883 슈퍼로우의 경우 이름에 걸맞게 머플러가 굉장히 낮아 꼬불꼬불한 산길에서 바이크를 기울이면

머플러 고정볼트가 바닥에 긁힌다는 점.
더군다나 이 때쯤 가계사정이 휘청거리기도 해서 바이크를 접어야 하는지도 고민했을 때였다.


마침 슈퍼커브의 디자인이 우리가 타던 것과 다르게 클래식한 옛날 디자인을 계승해서 출시되었다.
클러치레버가 따로 없어 조작법이 어렵지 않지만
4단까지의 기어가 있어 힘을 분배할 수 있다는 점이 주요 선택 포인트였다.
그렇게 우리는 민뚜가 타던 할리데이비슨 883 슈퍼로우와 내가 타던 pcx를 모두 팔고 
슈퍼커브 2대의 신차를 구입했다.

 

-

 

스로틀만 당기면 나가는 스쿠터만 타왔던 나에게는

슈퍼커브의 기어를 조작하는 것은 클러치레버가 없더라도 꽤나 복잡했다.

토크 위주의 세팅인지라 기어비도 굉장히 짧아서 쉴새없이 기어를 조작해야 했다.

스쿠터마냥 당기다보면 엔진소리와 진동은 커지지만 속도가 나지 않는 시기가 있고

그때 스로틀을 놓고 기어레버를 밟은 후 떼면서 스로틀을 당기는 과정을 되새기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

이렇게 처음엔 하나하나 신경쓰면서 달리던 이 과정을 점점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었다.

기어변속은 금새 적응할 수 있었고 기어비 또한 소기어와 대기어의 크기를 변경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소기어와 대기어를 교체하고 나에게 맞게 길들이니 최고속은 120km까지 나왔다.

 

로타리기어의 변속에 익숙해지니 레브매칭을 연습할 수 있었다.

슈퍼커브는 애초에 짐을 많이 싣고 동네를 구석구석 돌아다닐 수 있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배기량에 비해 치고나가는 힘, 즉 토크가 좋은 편이었다.

이것은 곧 백토크, 기어를 내렸을 때 회전력이 강제로 줄어드는 현상이 커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슈퍼커브는 뒤로 밀리고 앞으로 쏠리는 바이크였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고민을 민뚜에게 이야기하자

바이크와 엔진의 구조에 관심이 많은 민뚜는 나에게 이것저것을 설명해주었고

로타리기어는 클러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기어레버를 누르면서 클러치가 잡히고 떼면서 클러치가 떨어지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클러치레버가 있는 바이크처럼 반클러치 조작과 레브매칭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뜻했다.

기어레버를 밟은 후에 살짝만 떼면 반클러치 상태가 되고

이 때 밟기 전의 기어단수와 밟은 후의 기어단수의 기어비에 적당한 정도로

스로틀을 감아준 후 기어레버에서 발을 놓으면 백토크 없이 레브매칭이 가능했다.

 

이걸 알게 된 후 나는 기어변속과 같이 무의식적으로 레브매칭을 할 수 있도록 신호에 걸릴 때마다 연습했다.

그리고 스스로 마스터했다고 느낄만큼 백토크 없이 자연스럽게 레브매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지금도 레브매칭은 도심에서만 슈퍼커브를 타는 라이더에게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슈퍼커브로 평지보다 산맥이 월등하게 많은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을 쏘다니는 헤비라이더였다.

언덕을 올라가다 힘이 부족하면 기어 단수를 내려서 힘을 키워줘야 하고

이 때 백토크로 인해 바이크가 휘청거린다면 코너길에서 넘어지고 사고가 날 것이 뻔했다.

 

-

 

하지만 대략 1년이라는 기간동안 무꿍 무사고를 기록하며 15,000여km를 쏘다니고

나는 다시 욕심이 생겼다.

2종소형을 따겠다는.